경제발전은 모든 사회발전을 이끄는 토대이다.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가 활동하던 18세기 후반의 영국 경제는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않았으나,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직전의 공장제수공업(manufacture)이 크게 발달하여 시장경제가 이미 확립된 상태였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란 용어를 정리하고 넘어가자.
시장경제란 인간 생활에 필요한 물자들이 시장에서 상품으로 매매되어 교환되는 경제, 곧 시장을 통한 사회적 분업이 확립된 경제라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경제란 시장 경제에 사유재산제도 및 자본가와 노동자로의 계급 분화라는 두 조건이 더해진 경제를 말한다. 이론적으로는 조합사회주의처럼 시장경제가 공유재산제도와 결합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유 재산제도와 계급 분화가 수반되지 않은 시장경제는 거의 존재하지 않으므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는 사실상 같은 경제라 해도 무방하다. 다만 시장 경제는 시장기구를 강조하는 반면에, 자본주의는 자본가와 노동자로의 계급 분화와 사유 재산제도를 강조하는 용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나 중세 시대에도 모든 문명사회에는 항상 사유 재산제도와 무역과 시장이 존재해 왔다. 그러나 자본주의 이전에는 생산물의 일부만 상품으로 매매된 데 비하여, 근대 자본주의에서는 생산물 거의 전부가 상품으로 생산되어 매매된다는 점이 다르다. 즉 자본주의 이전에는 경제의 일부분만 시장경제였던 데 비하여, 근대 자본주의에서는 경제의 대부분이 시장경제이다. 또한 대부분 사람들이 소수 자본가나 다수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점에서도 자본주의는 과거의 경제와 질적으로 다르다.
서양에서 대략 16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자본주의는, 상업자본주의, 독점자본주의, 수정자본주의 및 투기 자본주의의 순으로 변해왔다고 볼 수 있다.
상업자본주의는 무역을 비롯한 상업이 이윤 창출과 자본축적을 주도했으며 상인들이 경제의 주도권을 잡던 초기 자본주의이다. 서양에서 대략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의 중상주의 시대가 이 시기에 해당한다.
1800년을 중심으로 약 반세기 동안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발생하면서 산업자본주의가 시작되었다. 산업혁명이란 증기기관을 비롯하여 방직업, 방적업, 철강업, 광업 등 주요 산업에서 근대적 생산 기계들과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도입되어 산업생산이 혁명적으로 증대한 것을 말한다. 산업혁명은 19세기에 영국에서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여러 나라로 전파되었다. 이에 따라 자본가와 노동자로의 계급 분화, 농업에서 공업으로의 중심 산업 이동, 수많은 중소기업 등장 및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19세기 유럽과 북미는 산업자본주의 세상이었다. 산업자본주의란 상업이 아니라 제조업과 광업이 이윤 창출과 자본축적을 주도하는 산업이며, 상인이 아니라 산업자본가가 경제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자본주의이다.
산업자본주의는 원래 수많은 중소기업들 간에 경쟁이 치열한 경쟁시장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경쟁에서 패한 많은 중소기업들이 퇴출당하고 소수의 독과점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는 독과점화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19세기 말부터 세계는 독점자본주의 시대로 진입했다. 이 시기에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열강은 자국 내 상품시장과 투자 기회가 부족해짐에 따라 군함과 대포로 후진국을 침략하는 제국주의에 의존하게 되었다. 1차 세계 대전은 이러한 제국주의 열강들 간 무력 각축의 필연적 결과였다.
주기적 불황은 1810년경 영국에서 처음 등장한 이래 약 10년을 주기로 전 세계적으로 반복되었으며, 거듭될수록 점점 더 그 규모와 정도가 확대되었다. 1873년에 시작된 세계적 대불황이기는 1896년까지 20년 넘게 지속되었다. 이대 불황을 계기로 열강들은 다시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했으며 제국주의를 크게 강화했다. 1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주기적 불황은 계속 발생하여 1929년 10월 뉴욕 주식시장의 주가 폭락으로 촉발된 대공황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대불 황기보다 훨씬 피해가 심했던 대공황으로 인해 각국의 고용과 생산은 많이 감소했다. 특히 미국은 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스미스 이래의 자본주의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붕괴하였다. 대공황의 한가운데인 1936년에 출판된 케인스의 은 정부가 중앙은행을 통해 통화를 발행하여 마련한 재원으로 대규모 공공사업을 벌일 것을 불황 대책으로 제안했다. 대공황 이후 1970년대까지 구미와 일본의 선진국 정부들은 복지국가를 진행하여 케인스의 충고대로 경제에 적극 개입했는데, 이 시대 이들 선진국의 자본주의를 복지 국가형 수정 자본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케인스는 그의<<일반이론>> 에서 정부가 통화 증발로 마련한 재원으로 재정지출을 확대하여 총수요를 확대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책을 제안했는데 이 정책을 최초로 실시한 것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이었다. 그런데 이정책은 케인스의 이 나오기 전인 1933년에서 1935년에 이미 입법화되어 실시되었다. 이를 보면 케인스의 정책은 케인스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보면서고 불황과 대량실업은 있을 수 없다는 고전학파의 완전고용 이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완고한 주류경제학자들이었다,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없으면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던 주류경제학자들은 케인스가 불황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제시한 이후에서 비로소 불황을 인정하게 되었다.
2차 세계 대전 후 1970년대까지 한 세대 정도 구미 선진국들은 정부의 적극적 경제개입 덕분에 시장의 실패에 성공적으로 대처하여 공정한 분배, 경제의 안정과 성장을 상당한 정도로 달성하여 장기 경제 번영을 이루었다. 이처럼 정부개입이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 것을 정부의 성공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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